最古 한글 금속활자…600년간 묻혀있던 '세종의 꿈' 깨어났다

입력 2021-06-29 18:23   수정 2022-10-10 16:27


ㅸ(순경음 비읍), ㆆ(여린히읗), ㅭ(리을여린히읗)….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법으로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600여 점을 비롯한 금속 유물들이 서울 도심에서 무더기로 출토됐다. 세종이 직접 제작을 지시한 ‘갑인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자동 물시계 부품 등 기록으로만 전하던 국보·보물급 유물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나온 유물은 조선시대 전기인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세종 연간의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고(最古) 한글활자 다수 출토
문화재청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서울 종로2가 사거리 인근에서 발굴 조사 중인 ‘인사동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한 다수의 금속 유물이 한데 묻혀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고 29일 발표했다. 연구원들이 유물을 처음 발견한 건 이달 초. 조선시대 동(銅)으로 만들어진 종과 개인 화기인 총통 옆에서 깨진 항아리가 나왔다. 항아리에서 떨어진 공깃돌 같은 파편을 씻어 보니 금속활자로 판명됐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30점가량이 전부여서 이번에 무더기로 출토된 금속활자는 조선시대 활자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다.

출토 유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만 사용됐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들이다. 동국정운식 표기법은 중국의 한자음을 표시하기 위해 고안돼 15세기에만 사용됐다. 훈민정음 첫 구절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에서 중국을 의미하는 ‘듕귁’이 대표적인 용례다. 극히 희귀한 ‘연주활자’도 10여 점 출토됐다. 연주활자는 인쇄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한문 사이에 자주 썼던 한글 토씨 ‘이며’ ‘이고’ 등 두 글자를 하나로 표기한 활자다.

이 한글활자는 1455~1461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는 “이번에 나온 글자들은 1461년 찍은 책인 ‘능엄경언해’의 글자와 같은데, 여기에 사용된 한자활자가 1455년 을해자(乙亥字)이기 때문에 한글활자도 비슷한 시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 연간 갑인년(1434년)에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되는 금속활자가 발견된 것도 길이 남을 만한 발견이다. 1796년 3월 17일자 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세종조에 주조한 갑인자를 사용한 지 300여 년이 됐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만큼 갑인자의 완성도가 높아 오랫동안 쓰였다는 얘기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한 것이 갑인자”라고 설명했다.
자동 물시계 부품 등 과학 유물도
자동 물시계의 시보(時報) 장치인 ‘주전’도 이번에 처음 실물로 발견됐다. 1438년(세종 20년)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 옥루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 부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1437년(세종 19년) 만들어진 천문시계 ‘일성정시의’도 조선왕조실록에 제작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지만 이번 발굴로 모습 일부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한 시계로 쓰인 도구다.

이번에 발굴된 금속 유물들은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힌 것으로 추정됐다. 금속활자를 제외한 유물은 모두 일정한 크기로 부러져 있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주민이 임진왜란 등 전쟁을 피해 도망가기 전 재산을 보전할 목적으로 묻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발굴 조사를 지휘하는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유물이 묻힌 땅은 당시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평범한 주택의 창고 밑으로 보인다”며 “주민 등이 전쟁통에 도망치면서 조선시대 비싼 금속이었던 구리 등을 일부러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유물 주인의 기구한 사연은 결과적으로 조선 전기 인쇄술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부분 금속활자는 이전에 제작된 활자를 녹여서 만들기 때문에 제대로 보존된 경우가 드문데, 항아리에 한데 모아 숨긴 덕분에 모습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글 창제 직후 활발한 인쇄 활동과 과학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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